지난 금요일 코스피는 5.72% 폭락한 6,690.62로 마감했다. 장중 매도 사이드카가 양 시장에서 발동됐고, 삼성전자가 -7.59%, SK하이닉스가 -8.34% — 급락의 뇌관은 ‘반도체 피크아웃’, AI 수요가 꺾인다는 공포였다. 한국 시장이 공포 속에 장을 닫은 뒤에야, 지구 반대편 샌프란시스코에서 AI 서밋이 열렸다(현지시간 24~25일). 그리고 주말, 정반대의 문서가 공표됐다 — 삼성·SK·네이버·현대차가 엔비디아·브로드컴·마이크로소프트·앤트로픽 등과 묶은 총 9,500억 달러(약 1,375조 원) 규모의 반도체·AI 인프라 공급 협력이다. 월요일 정오, 코스피는 6,696선 보합이다. 실망스러운 숫자로 보이는가 — 데스크의 독해는 반대다. 금요일 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4.25% 추가 급락했음에도 지수가 제자리를 지켰다는 것, 그것이 이 뉴스가 실제로 사들인 것이다.
금요일의 해부 — 급락은 미국이 만든 것이 아니다
24일의 폭락부터 실측으로 복기한다. 코스피 -5.72%(6,690.62), 코스닥 -5.32%(748.22). 그런데 그 전날 밤 미국 시장의 낙폭은 나스닥 -2.15%,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0.54%에 그쳤다. 미국이 2% 빠졌는데 한국이 6% 가까이 빠졌다면, 낙폭의 대부분은 서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증폭기는 세 개였다. 첫째, 직전의 과열이다. 코스피는 21일 +3.56%, 23일 +4.40%로 사흘 새 9% 가까이 치솟아 7,096.89까지 올라 있었다 — 미답의 7,000선 위에서 차익실현 대기 물량이 쌓일 대로 쌓인 상태였다. 둘째, 빅테크 실적 시즌이 던진 ‘설비투자 급증 대비 수익 창출 지연’ 회의론이 반도체 피크아웃 서사로 번지며 투매의 명분이 됐다. 셋째, 옵션 만기와 맞물린 기계적 매도다. 이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 2,683억 원, 기관은 1조 9,514억 원을 순매도했고, 그 전량을 개인이 5조 1,782억 원 순매수로 받아냈다 — 하루 5조 원대의 개인 매수는 이 시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규모다.
주도주의 낙폭은 공포의 과녁이 어디였는지 말해 준다. 삼성전자(005930)는 249,500원까지 -7.59%, SK하이닉스(000660)는 1,759,000원까지 -8.34% — 지수보다 깊게 빠졌다. 시장은 ‘AI 수요가 꺾인다’에 베팅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금요일 밤, 이번에는 미국이 뒤따라 무너졌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4.25%. 이 미국 세션은 샌프란시스코 서밋 개최일과 겹쳤지만, 9,500억 달러의 성과가 공표되기 전에 마감됐다 — 미국 시장은 결과를 모른 채 팔았고, 발표는 그 뒤에 나왔다. 월요일 아침의 한국 시장은 자기 급락의 여진에 미국발 추가 악재까지 얹고 개장해야 하는 처지였다.
9,500억 달러의 실체 — 계약서와 의향서 사이
주말 사이 시장에 도착한 반대 재료를 뜯어 본다. 현지시간 24~25일 열린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발표된 한·미 기업 간 협력의 총액은 9,500억 달러다 — 세부 내용은 한국시간 토요일 오후에야 공표됐고, 이를 처음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시장은 월요일의 서울이었다. 분해하면 성격이 보인다.
삼성전자는 브로드컴과 향후 5년간 2,000억 달러 규모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브로드컴이 설계하는 차세대 AI 가속기에 HBM4를 공급하는 것을 넘어, 2나노 파운드리 위탁생산과 첨단 패키징까지 일괄 제공하는 턴키 구조다 —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을 한 회사가 다 할 수 있는 종합반도체기업의 강점이 처음으로 계약 형태로 묶였다. SK그룹은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앤트로픽·아마존웹서비스 등과 총 7,500억 달러 규모의 공급 협력을 추진하는데, 이 중 엔비디아 몫 5,000억 달러는 상호 의향서(LOI) 단계다. 네이버는 엔비디아와 브룩필드로부터 도합 100억 달러를 유치해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현대차는 엔비디아 GPU 5만 장을 공급받아 로봇 개발 기반을 깐다. 국민연금이 실리콘밸리 6대 벤처캐피털과 출자 협력 양해각서를 맺은 것까지 포함하면, 반도체-인프라-자본의 세 층이 한 번에 묶인 패키지다.
여기서 데스크가 강조하는 구분이 있다. 이 9,500억 달러는 매출이 아니다. 상당 부분이 업무협약(MOU)과 의향서(LOI)이며, 법적 구속력이 있는 확정 수주와는 다르다 — 청와대가 “확정적인 선주문” 성격이라고 부연했지만, 문서의 형식과 발표의 수사는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발표가 시장에 중요한 이유는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의 증언이다. 금요일 서울 시장이 ‘AI 수요가 꺾인다’에 6%를 베팅하고 장을 닫은 그 주말, 수요자인 빅테크가 5년치 물량 확보를 문서로 못 박았다는 사실 — 피크아웃 서사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반증이 수요자 본인의 행동으로 제출된 것이다.
왜 지금 선주문인가 — 베라 루빈이 만드는 병목
빅테크가 5년 물량을 서두르는 기술적 배경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플랫폼 ‘베라 루빈’에 있다. 대량 양산에 들어간 이 아키텍처는 이전 세대 대비 에이전틱 AI 처리량을 최대 10배 끌어올리는 설계인데, 그 대가로 메모리를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요구한다. 초당 22테라바이트급 대역폭의 HBM4가 대량 탑재돼야 하고, 모건스탠리는 차세대 랙 시스템의 제조 원가에서 GPU보다 메모리·기판 비용의 상승률(약 435% 증가 전망)이 가장 가파를 것으로 추산했다. 칩보다 메모리가 더 비싸지는 구조 — 그리고 그 메모리 시장의 공급을 쥔 것이 한국의 두 회사다. 글로벌 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80%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지난주 피크아웃 논쟁의 축이 어디로 옮겨졌는지 보인다. 금요일까지의 질문이 ‘수요가 꺾이는가’였다면, 주말의 계약은 질문을 ‘공급이 따라가는가’로 바꿨다. 수요 증발을 두려워하는 시장에서 수요자가 5년 선주문으로 응답했다면, 남는 리스크는 수요가 아니라 실행이다 — 의향서가 본계약으로 전환되는 속도, 그리고 그 물량을 소화할 팹·전력·용수 인프라가 제때 깔리는가의 문제다.
월요일 정오의 실측 — 뉴스는 지수가 아니라 바닥을 샀다
이 글을 쓰는 27일 정오, 시장의 반응을 실측으로 읽는다. 코스피는 6,696선, +0.1% 보합이다. 9,500억 달러 뉴스치고 초라해 보이지만, 이 보합의 무게를 재려면 개장 전 조건을 같이 놓아야 한다 — 금요일 밤 미국에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4.25% 추가 급락했다. 그 악재를 안고 개장한 지수가 제자리를 지켰다는 것은, 서밋발 재료가 미국발 낙폭을 정확히 상쇄했다는 뜻이다. 뉴스가 산 것은 반등이 아니라 바닥이다.
수급의 표정은 더 구체적이다. 외국인은 정오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 9,397억 원을 순매도하며 금요일에 이어 이틀째 조 단위 매도를 이어가고 있다 — 외국인은 아직 이 서사를 사지 않았다. 반대편에서 개인이 1조 6,747억 원을 순매수하며 바닥을 받치고 있다. 흥미로운 디테일 하나 — 지난 칼럼에서 7,000선의 기계적 매도 주범으로 지목했던 금융투자가 오늘은 1,351억 원 매수로 돌아서 있다. 개인의 상장지수펀드(ETF) 저가 매수가 유입되면 유동성 공급자는 받은 만큼 현물을 사야 한다. 고점에서 팔던 그 기계가, 저가에서는 사는 쪽에 선다.
온도차는 시장 안에서도 갈린다. 코스닥은 +2.25%(765선)로 뚜렷한 강세이고 기관이 2,104억 원을 순매수 중이다 — 로봇·AI 인프라 소부장 테마가 서밋 낙수를 선반영하는 흐름이다. 반면 삼성전자 +0.6%, SK하이닉스 +1.0%로 금요일 낙폭(-7.6%, -8.3%)에 비하면 미미한 회복에 그친다. 시장은 서밋 재료를 지수가 아니라 종목으로 소화하고 있다 — 지난 두 칼럼의 결론과 정확히 같은 결이다.
데스크 판단
종합하면 이렇다. 펀더멘털의 질문은 바뀌었다 — 9,500억 달러가 반증한 것은 ‘수요 증발’이고, 남은 리스크는 의향서의 본계약 전환과 전력·용수·팹 건설이라는 실행의 문제다. 이것은 분기 실적이 아니라 연 단위로 검증될 항목이다. 수급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 외국인이 이틀째 조 단위로 파는 시장에서 지수의 추세 반전을 말하는 것은 이르다. 신뢰를 되돌리는 촉매는 계약 발표가 아니라 숫자다. 이번 주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의 실적에서 설비투자 가이던스가 알파벳의 가속을 추인하는지, 그리고 8월 1일 수출 잠정치에서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세 순기 연속 감속을 피하는지 — 이 둘이 확인되는 순간 선주문 서사는 장부의 숫자로 바뀐다.
그래서 결론은 지난 칼럼의 반복이자 강화다 — 지수가 아니라 종목이다. 낙수의 1차 수령처인 고대역폭메모리·첨단 패키징 밸류체인, 데이터센터의 새 병목인 전력·냉각 인프라, 그리고 이번 서밋에서 실물 발주가 확인된 로봇 생태계. 데스크의 채점 항목은 세 가지다. 첫째,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수 전환이 이번 주 안에 나타나는지. 둘째, 빅테크 실적 시즌의 설비투자 가이던스. 셋째, 8월 1일 수출 잠정치의 반도체 숫자다.
본 칼럼의 코스피·코스닥 지수, 투자자별 매매 동향,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는 7월 24일 확정치와 7월 27일 정오(12시 20분 무렵) 장중 실측 기준이며, 장중 수치는 마감 수치와 다를 수 있다. 미국 지수는 현지 7월 23~24일 종가 기준이다.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의 일정은 현지시간(태평양시) 기준이며, 협력 규모의 국내 첫 공표는 한국시간 7월 25일 오후 청와대 브리핑 보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샌프란시스코 AI 서밋 협력 규모와 세부 내용은 청와대 브리핑과 국내 보도를 인용했으며, 업무협약·의향서의 성격에 대한 해석과 수급 구조에 대한 판단은 공개 데이터에 기반한 데스크의 구조적 추론이다. 본 칼럼은 구조적 시황 진단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상품의 매수·매도 권유가 아니다. 투자 판단의 최종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