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만 보면 축포가 터졌어야 했다. 8월 21일 금요일 장 마감 후, 삼성전자(005930)는 이사회를 열어 올해 약 90조~110조 원 규모의 주주환원 시행 방안을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종전 최대였던 2020년 20조3,000억 원의 5배, 국내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연간 100조 원 선을 넘보는 규모다. 그런데 시장의 첫 답은 매도였다. 공시 직후 시간외 대체거래소에서 주가는 한때 26만6,500원까지 밀리며 그날 정규장 상승분 3.87%를 사실상 전부 반납했고, 주말을 넘긴 24일 월요일에는 낙폭이 계속 커졌다 — 오전 9시대 5%대였던 하락률은 오후 1시 26분 기준 9.06%(25만6,000원)까지 확대됐다. 같은 시각 우선주도 7.83% 급락했다.
사상 최대의 돈보따리에 사상급 실망 매물이 겹친 이 역설을 풀려면, 공시문에서 확정된 것과 유보된 것을 먼저 갈라야 한다. 시장이 판 것은 금액이 아니라 그 갈라진 틈이다.
확정된 것과 유보된 것
이번 공시에서 확정된 집행은 두 가지다. 첫째, 올해 3분기에 정규 분기배당을 포함해 약 30조 원 규모의 현금배당을 실시하며, 세부 내용은 10월 말 이사회에서 확정한다. DS투자증권은 정규 분기배당을 약 2조4,500억 원으로 보면 특별배당이 약 27조5,500억 원이 되고, 이를 반영한 올해 예상 주당배당금은 약 5,570원 — 공시 당일 종가 기준 시가배당률 약 2%로 추산했다. 둘째, 이와 별도로 임직원 성과 보상을 위한 약 15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의결했다. 시가총액의 0.91%에 해당하는 물량을 8월 24일부터 11월 21일까지 석 달간 사들인다.
유보된 것은 나머지 전부다. 90조~110조 원에서 3분기 배당 30조 원을 뺀 60조~80조 원을 배당으로 줄지, 자사주를 사서 소각할지, 어떤 비율로 섞을지는 올해 실적이 확정되는 내년 1월 이사회로 넘어갔다. 시장이 가장 알고 싶었던 항목 — 주주환원 목적의 자사주 매입·소각 — 에 관한 한, 이번 공시는 사실상 백지 위임장이다.
시장이 판 세 가지 이유
첫째, 소각이 없었다. 현금배당은 주주 계좌에 현금을 이체하지만 발행주식 수를 건드리지 않고, 수령 즉시 원천징수가 붙는다. 소각은 유통 주식을 영구히 지워 주당순이익(EPS)과 주당순자산을 즉각 끌어올리고, 과세 사건 없이 그 효과가 이후의 모든 이익에 복리로 얹힌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가 잉여현금흐름(FCF)의 50%인 45조5,000억 원 전액을 자사주 매입·소각에 투입하라고 요구해 온 것도 이 계산 때문이다. 15조 원 자사주 매입이 있지 않으냐는 반론은 절반만 맞다 — 그 물량은 소각용이 아니라 임직원 보상용이다. 매입 기간에는 매수 수요를 만들지만, 언젠가 임직원에게 주식으로 지급되면 시장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잠재 대기 물량이다. 주주에게 갈 잉여현금이 인건비성 재원으로 우회됐다는 비판까지 감안하면, 시장은 이 15조 원을 환원으로 세어주지 않았다.
둘째, 기대가 이미 그 위에 있었다. 반도체 호황으로 잉여현금흐름이 급증하자 시장에서는 환원 규모가 140조 원, 일각에서는 150조 원 안팎까지 갈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돼 있었다 — 교보증권은 이번 급락을 두고 “140조 원 기대가 선반영돼 있었다”고 짚었다. 90조~110조 원은 절대 규모로는 사상 최대지만 기대의 상단 대비로는 30조~50조 원 부족한 숫자다. 수급이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발표 전인 20일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1조5,000억 원 넘게 순매수했고 21일에도 외국인·기관이 동반 순매수였는데, 24일 장중에는 양쪽 모두 순매도로 돌아섰다. 재료가 공개되자 차익을 실현하는 전형적인 되돌림에, 20~21일 이틀간 13.7% 올랐던 선반영분의 반납이 겹쳤다.
셋째, 준칙이 그대로였다. 삼성전자는 2024~2026년 누적 잉여현금흐름의 50%를 환원한다는 기존 원칙을 유지했다. 불과 이틀 전인 8월 19일, SK하이닉스(000660)가 40조 원 전량 소각을 공시하면서 환원 기준을 ‘누적 FCF의 50% 범위 내’에서 ‘50% 이상’으로 — 상한을 하한으로 — 끌어올린 것과 정면으로 대비된다. 2027년 이후의 차기 환원 정책에 대해서도 아무 예고가 없었다. JP모건은 “환원 규모 상단은 전망에 부합하지만, 자사주 매입 발표의 부재와 총규모의 무변화는 높아진 투자자 기대를 감안하면 단기 실망 요인”이라며 자사주와 배당 간 배분 원칙을 포함한 자본배분 전략의 명확화를 주문했다.
왜 소각을 못 하나 — 10%의 사슬, 그리고 되돌아오는 루프
삼성전자 경영진이 소각의 수학을 몰라서 배당을 택한 것이 아니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제24조는 동일 계열 금융회사들이 비금융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합산 10% 넘게 보유하려면 금융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묶어 놓았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보통주는 각각 8.51%, 1.49% — 합산 약 10%로 한도에 맞닿아 있다. 이 상태에서 삼성전자가 보통주 자사주를 소각하면 발행주식이라는 분모가 줄어, 두 금융 계열사는 한 주도 사지 않았는데 지분율이 자동으로 한도를 넘는다.
올해 상반기가 이 구조의 실증이다. 삼성전자가 3월 보통주 7,336만 주와 우선주 1,360만 주, 약 16조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진행하기에 앞서, 삼성생명은 624만 주, 삼성화재는 109만 주 — 합계 약 1조5,000억 원어치를 블록딜로 미리 처분해 합산 지분율을 9.88%까지 낮췄다. 그런데 소각이 끝나자 분모가 줄면서 지분율은 다시 8.51%와 1.49%, 합산 약 10%로 되돌아왔다. 팔았는데 소각하면 제자리인 루프다. DS투자증권은 여기서 소각 여력을 정량화했다 — 보통주 10조 원을 소각하면 두 계열사가 약 1조 원, 20조 원이면 약 2조 원어치를 다시 팔아야 하며, 이를 감안한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여력은 10조~20조 원 수준이라는 추정이다. 110조 원의 재원 중 소각이라는 형태로 나갈 수 있는 돈이 구조적으로 5분의 1도 안 되는 셈이다.
배당은 이 사슬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발행주식 수가 그대로니 계열사 지분율도 그대로고, 오히려 현금이 지분율을 따라 흐른다. DS투자증권은 대규모 배당이 삼성물산으로 유입되고 삼성물산이 그중 최대 70%를 재배당하는 경로를 짚었고, 다올투자증권은 3분기 30조 원 배당을 전제로 삼성생명이 약 2조5,500억 원, 삼성화재가 약 4,500억 원을 수령할 것으로 추산했다. 소각을 반복할수록 금융 계열사의 삼성전자 보유 주식 수가 영구히 줄어 지배의 사슬이 약해지는 반면, 배당은 지배구조를 흔들지 않으면서 환원 의무를 이행하는 유일한 안전장치다. 이 거울 대칭 — 같은 지배구조 변수가 SK하이닉스에서는 소각의 순풍(소각이 최대주주 SK스퀘어의 지분율 요건을 채워줌)이고 삼성전자에서는 역풍인 구조 — 는 데스크가 공시 전 별도 리포트에서 해부한 바 있다. 이번 공시는 그 구조가 예측한 그대로의 결과물이다.
남은 카드 — 우선주, 그리고 1월
그래서 증권가의 시선은 우선주로 쏠린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어 금산법 한도 산정 대상인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가 우선주를 사서 소각해도 삼성생명·삼성화재의 보통주 지분율에는 아무 변화가 없고, 블록딜 매각 부담도 발생하지 않는다. 마침 명분도 있다. 보통주 대비 우선주의 가격 괴리는 보통주 프리미엄 기준 36% — 역대 괴리 밴드의 상단이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주식을 지울 수 있고, 괴리 축소라는 오랜 숙제도 함께 푼다. DS투자증권은 내년 1월 확정될 잔여 재원 약 70조 원 중 상당 부분은 배당으로 가되, 소각 배분에서는 우선주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흥미로운 것은 시장이 이 시나리오를 이미 한 번 사고팔았다는 점이다. 공시 당일인 21일 우선주는 8.26% 급등해 20만7,000원에 마감했다 — 우선주 소각 기대의 선반영이다. 그러나 24일에는 우선주도 7%대 동반 급락했다. 우선주 소각이 실행돼도 매수 수요가 우선주 시장에 한정되는 이상 보통주 주가의 직접 부양 효과는 제한적이고, 다수 주주가 원하는 보통주 소각의 대체재가 되지 못한다는 한계를 시장이 하루 만에 되새긴 셈이다.
다음 3년이 더 큰 질문이다
이번 실망을 단기 이벤트로만 읽으면 더 큰 그림을 놓친다. 연합인포맥스가 집계한 증권사 15곳의 전망치 평균 기준 삼성전자의 2027년 잉여현금흐름은 376조2,000억 원, 2028년은 343조5,000억 원(10곳 평균) — 2년 합산 약 719조7,000억 원이다. 현행 ‘50% 환원’ 원칙이 차기 정책에서도 유지된다고 단순 가정하면 이 두 해에서만 약 360조 원의 환원 재원이 만들어지고, 2029년까지 넓히면 재원은 500조 원대로 불어난다는 계산까지 나온다. 규모가 이 단위로 커질수록 ‘얼마나’는 점점 덜 중요해지고 ‘어떤 형태로’가 전부가 된다. 30조 원 배당의 세금 누수와 10조 원 소각의 복리 효과가 갈리는 세계에서, 2027년 이후의 프레임워크를 비워 둔 채 내놓은 110조 원은 시장에 절반의 답안지로 읽혔다.
일정은 세 개의 관문으로 정리된다. 10월 말 이사회가 3분기 배당의 세부를 확정하고, 내년 1월 이사회가 잔여 60조~80조 원의 배당·소각 배분을 결정하며, 그 어간에 2027년부터 적용될 차기 3개년 정책의 윤곽이 나와야 한다. 세 관문 각각이 이번에 유보된 답을 채울 기회다.
데스크 판단
첫째, 이번 실망의 본질은 경영진의 환원 의지 부족이 아니라 구조다. 금산법 10% 한도와 계열사 지분이 결합된 ‘한도 복원 루프’는 보통주 소각의 물리적 상한을 10조~20조 원대로 눌러 놓았고, 그 제약 아래서 배당 편중은 사실상 강제된 해였다. 다만 구조가 강제한 것은 형태까지다 — ‘50% 이상’으로의 준칙 상향, 차기 정책의 조기 예고, 우선주 소각의 선제 구체화처럼 구조 제약과 무관하게 열려 있던 카드들은 이번에 쓰이지 않았고, 시장의 실망은 정확히 그 지점을 겨눴다.
둘째, 24일의 낙폭을 실망 하나로만 읽는 것도 과잉 해석이다. 공시 전 이틀간 13.7% 오른 선반영분의 반납과 차익 실현이 하락의 상당 부분을 설명하며, 외국인·기관의 동반 매도 전환이 그 증거다. 낙폭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관문에서 형태의 답이 채워지는지다.
셋째, 관찰 계기판은 네 개다. 10월 말 이사회의 특별배당 세부, 내년 1월 이사회의 소각 배분 — 특히 우선주 소각의 규모, 임직원 보상용 자사주 15조 원의 지급·처리 방식(오버행 우려의 해소 여부), 그리고 계열사 지분 규제를 조이는 보험업법 개정안의 국회 향방이다. 마지막 항목이 통과되면 보통주 소각의 사슬은 더 조여지고, 우선주 카드의 비중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본 칼럼의 공시·실적 수치는 삼성전자 공시와 8월 24일까지의 보도, 데스크 자체 데이터 기준이다. 8월 24일 주가는 장 마감 전 오후 1시 26분 기준 실측이며 당일 종가가 아니다. 3분기 배당의 정규·특별 분해와 소각 여력 추정은 증권사 분석의 인용이다. 한국 시장에 대한 판단은 데스크 자체 분석이며, 본 칼럼은 매수·매도 권유가 아니라 구조 진단을 목적으로 한다.